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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합본> 역자 후기

 

고등학교 시절, 나랑 늘 같이 다니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정희야, 너는 하나님을 믿니?"

"아니!"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8살에 첫영성체를, 11살에 견진성사를 받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성당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후 기독교 재단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성경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나는 그저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냉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적극적인 반감을 가진 10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성경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잔인하고 죄가 크다고 생각해. 선악과를 인간이 먹지 말아야 했다면 그렇게 중요하고 위험한 나무를 인간이 사는 에덴동산에 두신 하나님이 인간의 원죄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니?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은 이유도 사실은 인간이 생명수의 열매까지 먹을까 봐서라고 기록하고 있잖아?

 

카인과 아벨의 사건만 봐도 그래. 카인의 선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선물만 받으신 하나님이 카인의 살인죄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니? 그뿐이니? 인간을 홍수로 몰살시키고 노아 가족만 살려주고, 이스라엘 민족만 편애하고 다른 민족은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고,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는데, 나는 그런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도 않아. 

 

그리고 천국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 같니? 천국이란 게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인간이 그 안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천국은 더 이상 천국일 수가 없어.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천국이라면 의미도 없는 것이고.

 

나는 영생이란 것도 탐나지 않아.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면 과연 행복할까?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면 이것저것 다해보고 더 이상 해보고 싶은 것도 없어 너무나 지겨운 나머지 제발 죽게 해 달라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지도 모르잖아?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나오지. 영원히 살게 된 인간의 유일한 소원은 제발 남들처럼 죽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죽음이 두려워 영생을 원하는 겁쟁이거나, 저 세상에 가서도 좀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하여 하나님이란 절대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기회주의자거나 그것도 아니면 온 우주를 통솔하는 막강 권력자에게 일단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런 내 생각은 지극히 타당해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내게는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그런데 나의 이 생각은 대학 첫 예배 시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4,500명을 수용하는 대강당, 예배 출석 일수를 채우지 않으면 졸업이 되지 않기에 지정 좌석에 할 수 없이 앉아 있었던 나는 저 멀리 앉아 계신 분을 보면서 내 믿음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분에게서 나는 지금껏 그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모습을 보았다. 

 

고요함, 확고함, 평화로움

 

그분이 목사님이 아니었더라면 하나님에 대해 나는 아직도 내 10대의 생각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렇게 평화를 직접 보여주시는 분이 죽음이 두려워서, 혹은 저 세상에서 누릴지도 모를 천국을 기대하며 목사가 되어 하나님에 대해 설교를 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에 대해 저 목사님이 틀렸고 내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저 목사님이 나보다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분에게서 느껴지는 확실함과 평화가 그 분을 의심할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당신께서 계시다면 저에게 당신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확실하다고,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진실을 알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리하여 침묵 속에 대답을 기다릴 때 내게 진실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 언어로 전할 수 없는 진실이 체험으로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라 할 만한 사건은 용서에 대한 경험이었다(하단의 주석 참고). 용서는 내가 상처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해 주었고 그 즉시 하나님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시간과 공간이 실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천국이 가능할 뿐 아니라 실재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경험한 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말로 전달될 수도 없고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는 책이 있었다. 아무도 믿어주기 어려운 경험, 심지어 정신이상자로 치부되기까지 했던 경험이 진리임을 적어 놓은 책을 발견했을 때 그 반가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기적수업은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토록 놀라운 책이 한국에 알려지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내가 번역자가 되어 소개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번역은 쉽지 않았다. 까다로운 문장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나는 이 일을 하겠노라고 동의했기 때문이리라.

 

기적수업을 번역하기 시작한 지 14년, 공식번역자로 선정된 후 8년 만에 기적수업 번역이 완성되었다. 때로는 진도가 나가지 않고 때로는 아예 번역을 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나는 늘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이제 기적수업은 내 손을 떠나 여러분을 만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지만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문구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기적수업은 진리를 담고 있기에 여러분을 빛의 길로 인도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나는 장담한다.

 

끝으로 기적수업에 대해 지도해 주셨던 켄 왑닉 박사님과, 나와 함께 기적수업을 번역한 김지화, 기적수업의 출간을 위해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던 기적수업 한국 모임의 편집자들과 자원 봉사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하며 역자 후기를 마친다. 

 

 

2014년 12월

구정희

 

 

         주석: 용서에 대한 경험은 기적수업 한국모임 자유 게시판에 용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http://cafe.naver.com/acimkorea/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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